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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약재&보양

약초 역사 및 도라지·더덕·황기 전설 속 효능

by 니~킥 니~킥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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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니~킥입니다.

오늘은 몸에 좋은 약초의 역사를 살펴보고 약초 중 가장 잘 알려진 도라지와 더덕 그리고 황기에 대한 옛이야기를 들어보며 효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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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 역사 및 도라지·더덕·황기 전설 속 효능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조상들은 아프거나 다치면 약을 찾습니다. 식물, 동물, 고아물 등을 이용하여 경험을 바탕으로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 그리고 널리 사용되어 왔던 것이 약초입니다. 인간이 역사에서 약초를 이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고대 기록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향료와 약초로 쓰이는 식물이 지급으로부터 6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선사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엣 발굴되었고, 각종 약초를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한 기록이 3천 년 전의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에서도 2400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산모에게 진통제로 버드나무 잎을 씹게 하는 등 약물로 사용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 약초의 이용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식량을 얻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초 역사

중국에서는 4500년 전부터 삼황의 1인인 신농씨가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는 법과 농업을 가르쳤다 하여 농업의과 의학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웅과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며 삼칠일 동안 기도하라고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아 동양에서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성이 강한 식물을 이용한 의학체계가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400년경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약초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군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약 1세기경 디오스코리테스는 로마군의관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600여 종의 약초정보를 모아 '약물지(De materia Medica)를 저술하였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약추를 약의 재료뿐만 아니라 가벼운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차로 마셨고, 귀족들은 기름을 뽑아 입욕제로 쓰는 등 약초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할 당시에도 허브 종자를 가졌다고 합니다.

중국은 1700여 년 전 도홍경이 저술한 '신농본초경'을 시초로 계속 보완되면서 이시진이 '본초강목'을 명나라시대와 와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561년 고구려 평원왕이 중국으로부터 의서를 들여와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것이 최초의 의학 관련 기록입니다.

 

백제에서는 독자적인 의서인 '백제신집방'이, 통일신라에서는 '신라법사방'이라는 의서가 발간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과 세종 때 발간된 '향약집서방'을 거쳐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약물치료 체계를 확립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약초의 활용과 관련되어 동·서양 모두 그 역사적인 사실과 그 그록물을 남겼으며 현재까지 이어오며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약초와 관련된 갖가지 많은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도라지 이야기

옛날에 도라지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겐 어려서부터 양가 부모님이 정해놓은 약혼자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둘은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총각은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도라지 처녀에게 꼭 자기를 기다려 달라는 말만 남겨놓은 채.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가도 총각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대신 중국에서 사림을 차렸다는 좋지 않은 소문만 무성하게 들렸습니다. 처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바닷가로 나가 약혼자가 떠나간 서쪽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도라지 처녀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바닷가로 나가 약혼자를 그리워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해 그 자리에서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라지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라지는 꽃이 피면 수술의 꽃가루가 먼저 터져 날아가고 그런 다음에야 암술이 고개를 내밉니다. 즉 한 꽃 안에서는 수정할 수 없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도라지 꽃말의 유래는 꽃의 생리를 관찰하여 얻어낸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도라지의 쌉쌀한 맛은 도라지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덕 이야기

경남 거제에는 천년 묵은 장생 더덕도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동부면 갈곶이 해금강이 산수 수려한 절정지로 남방의 삼신산이라 부릅니다. 노자산에 올라와 주위를 살펴보면 산 준령이 넝쿨같이 뻗어내려 해금강이 칡뿌리같이 생기기도 하였고 또는 용이 바다 깊숙이 잠겼다가 치솟으며 여의주를 문 듯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곳의 영산인 삼신산으로 알고 진시황이 억만년을 살고파 심복을 시켜 동남동녀 삼백명을 이곳에 보내어 불로초를 캐게 하였으나 불로초를 캐지 못하고 태풍을 만나 동해 바다로 흘러갔습니다. 갈곶이 해금강에 천년 묵은 더덕이 있었는데 천 년이나 된 더덕은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짐승이나 새로 변하기도 하여 자유자재로 변신하였다고 합니다. 더덕은 상주로 변장하여 머리에 삿갓을 쓰고 삼베옷을 입고 거제 읍내에 와서 장을 보고 간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파다하였습니다. 상주로 변한 더덕을 잡는 날에는 팔자를 고치기도 하고 불치의 병을 고치기도 한다는 말 때문에 불로의 영약인 더덕을 잡는다고 길 가는 상주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더덕은 약으로도 쓰이지만 섬유질이 풍부하고 씹히는 탄탄한 맛은 '산에서 나는 고기'에 비유됩니다. 게다가 생김새는 인삼이나 도라지와 비슷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친숙한 약초입니다.

 

황기의 전설 속 효능

'기(氣)를 '보(補)하는 황기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라의 선종이 즉위한 초년에는 국가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안하여 살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태후가 병에 걸려 점점 몸이 약해지더니 기가 허해져 탈진증상을 보이고 맥이 침하여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인사불성으로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상황이 급해지자 당선종은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시름에 빠져있던 어느 날 눈에서 번쩍 빛이 나더니 무엇을 생각했는지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맞아! 있다 있어!" 당선종이 전에 본 서적 중에서 황기의 신비로운 효능을 읽은 것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한 번 시험을 해보자. 황기는 기를 보하는 작용이 탁월하니 효과가 있을 것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어의에게 일러 황기탕을 태후에게 복용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어의는 황기탕을 복용케 하려 했으나 태후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상태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심하다 생각한 것이 황기를 오랜 시간 달려 그 향과 기로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달인 황기탕을 태후의 침상 밑에 두어 그 향과 기운이 코와 피부를 통해 들어가게 해 주었더니 위의 기운을 튼튼하게 해 주어 비 오듯 흐르던 땀이 멈춰지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꽉 다물어져 있던 입이 벌어지고 몸은 차차 호전되어 태후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단너삼'으로 불리는 황기는 별명으로 백본(百本), 왕손(王孫)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백약의 근본이라든가 황실의 귀인을 나타내는 말들인 것을 보면 황기가 사람에게 매우 좋은 약재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료 =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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